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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보다 힘겨운… ‘우영우’들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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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쓸모가 있어야 우릴 받아줄 거라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나가라고 할까 봐 몸을 사렸죠. 잘 지내기 위해 마을에 도움될 거릴 찾았어요. 사회 적응 훈련이란 명목으로 어르신들 짐을 대신 들어드리거나 시장을 대신 봐 드리려고 했어요.”
박정경(46)씨가 지난 4일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 도중 1년 전을 떠올렸다.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 ‘별난고양이꿈밭(이하 꿈밭)’이 제주공항 가까이 사무실을 옮긴 직후였다. 꿈밭은 발달장애아들의 돌봄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 부모들이 모여서 만든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지레 움츠러들었던 박씨의 생각이 바뀐 건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의 조언을 듣고 나서였다. “아이들을 쓸모의 논리에 가두지 말라고.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박씨에겐 갖가지 직함이 따라붙는다. 그는 발달장애 부모 단체와 협동조합의 대표다. 그림책 작가이면서 뉴스레터 편집도 맡고 있다. 자격증도 특수아동지도사, 아동미술심리치료사, 보육교사 등 여럿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세 아들을 키우던 그의 삶은 둘째 건하(10)가 두 돌 무렵이던 2014년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쌍둥이 동생 정하보다 언어 발달이 느려 찾아간 동네 발달지원센터에선 눈맞춤과 호명 반응이 없다며 자폐를 의심했다. 치료에 전념하던 부부는 2016년 삼형제를 데리고 제주도로 향했다. 좋은 환경에서 한동안 양육에 집중하면 건하의 상태도 나아질 거란 기대도 있었다.
제주도에 눌러앉자 고민거리도 달라졌다. 7살이 된 건하 앞에서 개정 교육과정이나 사교육에 대한 걱정은 후순위였다. 박씨는 “2017년 당시 제주시내 병설유치원 특수학급이 3개, 정원은 12명이 끝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떤 교육을 시킬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을 시킬 수 있느냐’ 하는 절박함의 문제였다. 시 교육지원청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혼자선 ‘화력’에 한계가 있었다.
급한 마음에 같은 처지의 엄마 7명이 일단 뭉쳤다. 회원 수 460여명, 제주도 최대 규모의 발달장애아 부모 커뮤니티로 자라난 ‘제주아이 특별한아이(제주아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꿈밭은 발달장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피부로 와닿은 돌봄공백을 해결하고자 출발했다. 처음엔 부모들이 품앗이처럼 서로 아이를 돌봐주는 ‘공동돌봄’ 형태였다. 경험이 쌓인 뒤엔 조합에 속하지 않은 발달장애 아이들까지 돌봤다.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종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구조적 덕에 꿈밭 조합원들은 더 세심해질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비장애 형제·자매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박씨는 “초3~4짜리들도 꿈을 물으면 하나같이 자기 동생 장애를 없애 달라고 한다. 자기와 관련된 꿈인 경우가 드물다”면서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한테 집중하고 정체성을 찾는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꿈밭이 지향하는 발달장애 아이들의 미래를 ‘지역사회 기반의 상호의존적 자립’으로 규정했다. 탈시설 흐름을 고려해서라도 어릴 때부터 비장애인이나 비교적 장애 정도가 가벼운 이들과 부대끼며 알아갈 시간을 줘야 한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론 다함께 돌봄센터 등에서 장애 아동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줄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공적인 개입 없인 발달장애 아이 부모와 비장애 아이 부모가 서로를 피하는 게 현실”이라며 “부딪혀야 타협의 순간도 온다. (과정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과 같이 살라’고 하면 그거야말로 황당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자율성도 강조했다. 단순히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을 ‘뺑뺑이’ 식으로 돌리기보단 당사자인 아이 한 명 한 명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주목해야 건강한 돌봄이라는 것이다. 꿈밭이 시도한 ‘자율성 프로젝트’도 그 일환이다. 다양한 프로그램 재료를 준비해 놓은 상황에서 아이가 각자 하고 싶은 놀이를 하도록 뒀다. 강사는 일대일로 붙되 최소한의 중재만 했다. 4주가량 지나자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움직였다.
박씨도 처음엔 아들의 장애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버거웠다. 인정해버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컸고, 그렇기에 장애 등록도 차일피일 미뤘다. 자폐로 정식 진단을 받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돌아봤다. 건하의 장애를 부정하려고만 했지, 한 번도 건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며 쓴 글을 그림책 창작 시민 프로그램에서 발표했다. 그림책 ‘엄마는 너를 위해’는 그렇게 나왔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모에게 건네는 위로기도 했다. 박씨는 “그 전엔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아이가 이럴까’ 생각했다”며 “그걸 떨쳐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꿈밭에서 매주 커뮤니티 뉴스레터 ‘토닥토닥’을 만드는 이유도 비슷하다. 아이의 발달장애를 알고 나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초보 부모들에게 검증된 정보와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다. 발달장애 아동 부모들이 직접 발로 뛰어 기사를 쓰고 편집한다.
서로를 알아가는 게 발달장애인 자립의 첫 단추라고 여기는 그는 ‘우영우 신드롬’이 반갑다고 했다. 박씨는 “주변 부모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을 한 번 더 생각해 주고 함께 살아가야 할 구성원으로 봐주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동시에 드라마와 현실의 괴리는 ‘목마른 개인’의 힘만으로 좁혀지지 않는다는 인식도 뚜렷했다. 그가 알고 지내던 이웃 발달장애 아동 부모는 지난해 아이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근엔 모친이 조기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는 바람에 남겨진 성인 발달장애인이 홀로 자립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박씨는 “협동조합을 만들고 자격증을 따도 개인의 에너지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돌봄을 실현하려면 지방자치단체·정부가 충실한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58845&code=11131100&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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