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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2] 목표가 없는 것, 그것이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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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17회 작성일 25-03-1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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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부터 발달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색깔빛깔 마음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부터 이 프로그램 보조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안주현 씨의 글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글쓴이 안주현 

색깔빛깔 마음별 여행 수업 보조강사. 

교육과 예술이 어떻게 만나 삶과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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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부터 ‘제주아이 특별한 아이’에서 기획한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오감통합놀이 프로그램에서 보조 강사로 함께하게 되었다. 5월 15일, 기다리던 아이들과의 첫 번째 수업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참가 어린이는 모두 8명. 엄마 손을 꼬옥 잡고 수줍은 듯 교실에 들어서서는 아이들을 보니 후후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엄마 뒤에 숨기도 하고, 개구쟁이 같은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서성이기도 한다. 서로 다른 아이들 각각의 모습이 보인다.

  강사들은 자연스럽게 한 명씩, 마치 운명처럼 스르륵 한 아이씩 담당하게 되었고, 나 역시 귀여운 친구와 수업을 시작했다. 아주아주 진지하게 한땀 한땀 정성 들여 그림을 그리다가... “아니야!” 하며 휙 긋고 다시 시작. 그리고 다시 “아니야!”를 반복한다. 아이는 점점 짜증이 올라오는 듯하다. 초보 강사인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무엇 때문일까? 너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데…. 안타까움이 주룩주룩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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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어찌어찌하여 폭풍 같은 첫 수업을 마쳤다. 다양한 색깔의 마음이 빛처럼 내 가슴속에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5월 17일 김인규 선생님을 모시고 특강을 들었다. 김인규 선생님은 공교육 미술 교사로 30년을 일한 뒤 퇴임하셨고, 화가로서의 삶과 동시에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로서 발달장애 아이들과 미술 수업을 진행하고 계시다.

  개인적으로는 11년 만에 다시 선생님을 대면하는 기회였다. 10여 년 전 대안교육에 열정적인 관심을 가졌던 나는 자료를 찾다 우연히 김인규 선생님 블로그를 만났고 그 뒤로 사생팬(!)이 되었다. 한동안 블로그만 덕질하다가 대안교육잡지 <민들레>에서 읽기 모임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그토록 고대하던 선생님과의 만남을 이루어 내었다. (역시 덕질은 통하는가!) 당시 만삭이었던 나는 산 같은 배를 부여잡고 선생님께 답답했던 마음의 질문들을 드렸더랬다(이 인터뷰는 <민들레> 제82호에 실렸다). 선생님은 흥분한 나의 질문에 차분한 대답을 들려주셨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대안교육이라는 틀을 벗어나 교육과 삶이라는 확대된 시야로 세상에 한 발 디딘 나에게 선생님과의 재회는 뜻깊은 만남이었다. 나이는 드셨지만 오히려 당시보다 활력 넘치시는 모습에 ‘역시 은퇴하시고 나니 조금 자유로우신가!’ 싶기도 했다(아니시라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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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는 사전에 강의 신청자들에게 받은 위 질문들로 시작되었다. 아직 어린 발달장애 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절절한 마음들이 보인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속에서 부모로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들에 선생님은 차분하게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나에게 섬광처럼 파밧! 파고들어온 대답은 이것이다.

  “목표가 없는 것, 그것이 예술이 아니겠는가.”

  턱 하고 숨이 막혔다. 잊고 있었던 예술에 대한 의지와 본질에 대하여 ‘쿵!’ 하는 대답이 들려온 것 같았다.

  목표란 삶을 좁은 시선 안에 가둬둘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설정된 목표 안에서 앞을 보고 달려가야만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물론, 앞으로 가야만 하는 때도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가야 할 때는 가야 한다. 그러나 가끔 숨을 쉬고 옆과 뒤를 돌아볼 시간 역시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 삶에서의 예술의 본질 아닐까?

  목표 없이 그저 마음으로 행하는 것. 나를 살피며 감정을 돌아보며 집중하는 시간들. 그것은 미술일 수도, 요리일 수도, 운동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목표 없이 행위에 집중하며 고정된 나를 파괴하는 ‘예술’로써 삶을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닐까?

  김인규 선생님은 오랜 시간 발달장애 아이들과 수업을 해오고 있다. 아이들 모습 그대로에 귀를 기울이며, 비장애 아동처럼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닌, 기능적인 수업이 아닌,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예술 수업을 하고 계신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을 관찰하고 마음을 읽어 그저 행위에 필요한 조건과 기회를 제공하는 자로 존재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유치원 수업을 나가신 적도 있는데, 선생님이 수업하는 모습을 보며 유치원 교사들이 “선생님처럼 수업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 말에 “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관찰하는 것이다.” 하셨다는 말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씁쓸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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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오랜시간 미술활동을 하며 공감형성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사례


  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 모두 목표가 있다. 배워야 한다는 것, 배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 목표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에 얽매어 오히려 배우는 행위보다도 가시적인 성과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모든 것에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곳에서는 이것이 필요한 것 아닐까? “목표 없이 예술하기!”

  지난 수업이 떠오른다. 안절부절못했던 내 모습. 내 눈앞에 어떤 목표만이 놓여 있었던 건 아닐까?

  김인규 선생님은 어떤 매체에도 관심을 두지 않던 아이에게 한꺼번에 재료를 주지 않고 하나씩 주었더니 실컷 즐기더란 일화를 들려주셨다. 물감과 종이를 이용해 반복적인 행위를 하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시각이 아니라 촉감과 청각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도. 미술 재료에 두려움이 있던 아이에게는 좋아하는 장난감에 조금씩 매체를 섞어 주었더니 시간이 흘러 매체를 만지기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무엇이 옳다고 강요하지 않고, 아이를 관찰하고 슬며시 다가가 아이에게 맞는 조건과 기회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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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규칙을 발견하고 미술매체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나갔던 사례


  연필을 쥐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쥐여준들 무엇을 하겠는가? 연필을 쥐여주었다는 것은 그리기를 목표로 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연필은 어떤 아이에게는 그저 막대기일 수 있으며, 뾰족한 파기 도구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매체 자체여야 하는 것이다. 부러뜨릴 수도, 던질 수도, 무언가를 파낼 수도 있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교사는 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수업 역시 아이들 하나하나의 감정과 마음의 움직임은 각자의 다른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며 질문하고 스며들어 조건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 많은 시간과 관심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므로 그곳에 교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스스로 대답해 본다.

  자, 다음은 어떤 색을 마음껏 빛나게 할 것인가? 힘 내서 다음 수업을 준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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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런 베커 그림책 <당신은 빛나고 있어요>, 이미지 출처 - 트위터 @antenna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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