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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9]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무엇이 판타지일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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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16회 작성일 25-03-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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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극본 문지원, 연출 유인식)가 화제입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시켰던 드라마가 없지는 않았지만, <...우영우>에서는 주인공인 자폐인 변호사의 입장과 시선을 통해  세상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점이 돋보입니다. 소리에 예민하기 때문에 거리로 나갈 때는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새로운 장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눈을 감고 손으로 숫자를 세면서 낯선 공간에 대비하고, 집중적이고 제한된 관심을 보이는 대상이 있고(우영우에게는 '법'과 '고래'가 특히 그렇습니다)... 
  점점 시청률이 올라가는 가운데 장애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반응을 흔히 접할 수 있는 반면, 막상 자폐인 가족 중에서는 이 드라마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감상을 전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7월 11일(월)에 '토닥토닥 치유 글쓰기' 워크숍(별난고양이사회적협동조합 주관) 참가자들이 이 드라마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들에 바탕한 드라마 리뷰를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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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신수진

어린이책 편집자. 사회학을 공부하는 늦깎이 대학원생.

고래에 관해서 두 시간쯤 떠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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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과연 무엇이 판타지일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 2화가 방영된 뒤 SNS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와 돌봄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저도 조금 감격했어요. 드라마 대사들은 하나도 허투루 쓰인 것이 없어 보였고, 등장인물들은 '실제로 저럴 리가 없지만, 저러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나' 싶도록 입체적으로 그려졌고, 주인공 우영우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각종 소품들(괴로운 PPL 전혀 없음)과 고래 CG 장면 등에 돈 들인 티가  나서 시각적으로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능력주의다. 장애인은 저렇게 뛰어난 능력을 증명해야만 사회에서 받아준다는 거냐" "예쁘고 귀여운 장애를 보여줘서 대상화시킨다" "이 사회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데, 장애인을 그저 귀엽고 안쓰러운 존재로 두고 싶어하는 비장애인들의 치사한 욕망이 보인다" 같은 반응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 정도 되는 '슈퍼장애인'도 사회의 편견과 몰이해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여주는 거 아니냐" "드라마라는 장르 특성상 주인공이 평범할 수는 없다" 같은 반응도 있었고요. 

  저는 자폐아를 양육하는 어머니 두 분의 반응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한 분은 "우리 아이와 다른 장애를 지켜볼 자신이 없다"고 했고, 다른 한 분은 "이 드라마로 다시 한 번 타자화되는 경험"을 하며 "어떤 장애인은, 어떤 이야기는 수용하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비장애인의) 위치, 그런 자신을 기특해하는 그 해맑음"을 참을 수가 없다고 하셨거든요. 

  <...우영우>에 관해 이야기할 때, 드라마 자체의 성취에 대해서만 말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저는 1, 2화를 보고 난 뒤 그동안 한국 드라마가 장애를 다루어왔던 방식에 비해 이 작품이 얼마나 진일보했는지를 파보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지만, 드라마 바깥에 존재하는 장애인의 고통과 장애인 가족들이 드라마 속 '판타지'를 보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괴리감 또한 이 작품을 둘러싼 중요한 반응임을 알게 됐습니다. <...우영우>에 환호하면서 "이 좋은 걸 왜 안 보는데?" 의아해하는 비장애인들의 반응이 "너희 이야기야. 고맙지 않아?"라고 강제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이만큼 논의를 끌어낸다는 자체가 '잘 만든'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굿닥터>나 <싸이코지만 괜찮아>를 가지고는 이 정도까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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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토닥토닥 치유 글쓰기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는 양육자들은 이 드라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궁금했습니다.
  "내가 백날 우리 아이의 자폐에 대해서 말해봤자 드라마 한 편으로 이해시키는 것만 못하다. 이런 이야기가 많아져야 한다" "장애를 특이함이나 기이함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난 못 보겠더라" 하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내 아이의 삶, 우리 가족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라는 거죠. 
  그러고 보니 저도 제 직업군(편집자)을 다룬 한국 드라마는 잘 못 보고 보기도 싫었습니다. 오글거리도 하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현실을 드라마가 화려함으로 가려 버리는 게 화가 나기도 하니까요. 오히려 제 현실과 백만 광년 떨어져 있는 드라마는 재미로 그냥저냥 봅니다. 완벽한 '남의 얘기'면 그럴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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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님도, 정훈이도 똑같은 자폐인데 둘이 너무 다르니까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서번트 증후군'으로 보이는 '천재 자폐인' 우영우는 장애인의 일반적인 현실을 대변할 수 없는 캐릭터이고 오히려 '자폐인이라면 무언가를 천재적으로 잘할 것'이라는 편견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 나도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 '얘는 뭐에 천재성을 보이려나?' 은근 기대했다는 고백 등도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염려를 예상한 듯, 3화에서는 천재성과는 거리가 먼 자폐인이 등장합니다. 자살하려는 형을 구해내려던 자폐인 동생(김정훈)이 형을 폭행해 죽인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인터넷에서는 악플에 시달립니다. 우영우도 로펌 사무실에서는 피고인의 아버지에게, 재판정에서는 검사에게 막말과 다름없는 비난을 받은 뒤 결국 재판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사표를 낼 정도로 3화는 마음이 좀 힘든 회차였습니다. 

  우영우는 내레이션을 통해 말합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 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아가 살면 국가적 손실'이라는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장애의 무게입니다." 

  김정훈을 태우고 온 택시기사는 우영우를 보고는 당황해하다가 정명석 변호사에게 택시비를 받아 갑니다. 출장 가는 길에 만난 이준호의 대학 후배는 우영우를 직장동료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고 '봉사의 대상인 장애인'으로 보면서 "화이팅!"이라고 속삭이고 갑니다. 결정적으로, 법정에서 검사는 변호인 우영우가 "자폐환자"냐 아니냐를 두고 으르렁댑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정신과 의사가 "자폐가 있다고 해서 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닌데 어떻게 '환자'라고 단정하냐. 그리고 내가 감별사도 아닌데 처음 본 사람의 자폐 여부를 어떻게 진단하냐"며 어이없어할 정도였죠. 뛰어난 천재든 6~10세 지능이든 간에 장애라는 낙인과 편견이 똑같이 작용하는 것을 보여준 에피소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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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우영우가 판타지적 인물이라고들 하는데, 저는 이 드라마 최고의 판타지는 정명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이준호가 유니콘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대형 로펌에서 저 정도 지위에 있는 저 나이대 남성 변호사가 과연...?' 하면서 "정명석이야말로 판타지!!"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저는 작가가 이런 인물을 통해 '좋은 인간상'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한 싸움은 정말정말 중요하지만, 세상에는 각성한 개인이 조금씩 바꿀 수 있는 것들도 있게 마련이잖아요.

  정명석을 비롯해 이준호, 최수연, 동그라미 등등이 보여주는 포용적인 시민상이 저는 참 좋습니다. 이런 인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고요.  "미안해요, 보통 변호사가 아니라고 해서." 하고 바로 사과하는 상사, "제 후배의 실수"라고 썼다가 "제 후배의 잘못"이라고 수정하는 동료, 천재성을 질투하면서도 병뚜껑을 따주고 구내식당에 김밥이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말하는 친구...  자신 또한 취약한 데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약자들과 공감하며 살아가는 이런 모습이 3화의 싹퉁바가지 검사(더 심한 욕을 하고 싶...)나 권모술수 권민우 같은 인물보다 훨씬 풍요롭고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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