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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04] 우리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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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25회 작성일 25-03-0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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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평범한 일상을 나누는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사단법인 제주아이 특별한아이 현지은 이사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단법인 제주아이 특별한아이는 제주도 발달장애인 부모 모임으로 발달장애인을 이해하고 양육 정보 나눔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합니다발달장애인 가족 활동 지원문화예술활동 지원 등 발달장애인의 행복한 삶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고시퍼!

 

현지은

 

성향이 모두 다른 삼형제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몇 년 후 성인이 될 아이들에게 지금이 중요한 시간임을 상기하며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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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열두 살인 우리 진성이가 다섯 살 때 일이다. 두 살 터울 삼형제를 데리고 아이를 키우는 친한 친구들과 처음으로 키즈카페에서 함께한 날이었다. 친구들은 앉아서 식사를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나에게는 함께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진성이가 편백 블록을 집어던지고, 뛰어다니며 소리 지르고, 좋아하는 돈가스는 너무 허겁지겁 먹어서 말려야 했고... 불편하고 땀이 났다. 원하는 걸 못하게 하자 진성이는 핏줄이 설 만큼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그냥 내버려둘 수 있는 곳은 아니었기에 최대한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한두 달 전부터 뭔가를 원할 때 진성이가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면서 가르치던 게 ‘하고 싶어’였다. ‘하고 싶어’에는 먹고 싶어, 놀고 싶어, 소리 지르고 싶어 등 원하는 모든 단어들을 대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고!싶!어! 네 음절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고 ‘하!’ 자 없이 ‘고시퍼’ 세 음절만 어쩌다 한두 번 따라하던 때였을 거다. 그곳에서 진성이는 ‘고시퍼’를 연신 외치며 울어댔다. 모든 아이들이 다가와 “왜 그래요? 아파요?” 물어보는데 또 진땀이 났다.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까지 나는 진성이의 행동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하며 전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매번 ‘진성이는 왜 이럴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을까?’ ‘말로 하면 되는데 다른 애들처럼 왜 말을 못할까?’ ‘조금 진정하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할까?’ ... 이렇게 한없이 의문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저 “하고 싶어, 라고 해봐! 하고 싶어! 하고 싶어!” 하며 끝없이 가르치기만 했었다.

나는 잠시 기다리다가 차분하게 진성이에게 “하고 싶어?”라고 물었다. 진성이는 “고시퍼... 고시퍼...”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얘기했다.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게 있대.” 하고 말해 주었다. 아이들은 “근데 왜 ‘고시퍼’예요?”라고 또 질문했다.

“응... 아직 말을 잘 못해서 ‘고시퍼’라고 하는 거야...”

“아, 그렇구나. 너 뭐 하고 싶어? 이거? 이거?”

작은 아이들이 주변에서 도와주었다. 그 작은 아이들보다 어쩌면 더 어렸던 엄마와 함께하던 진성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왜 진성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게 어려웠을까... 왜 누군가가 진성이에 대해 물으면 눈물부터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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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는 클레이로 캐릭터 만들기를 무척 좋아한다.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다. 사실, 입학 전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두 살 많은 형, 두 살 어린 동생과 초등 6년을 같은 학교로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전까지 4년 이상 동쪽으로, 서쪽으로, 제주시내로 어린이집, 치료실, 복지관을 데리고 다니느라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평생 픽업만 하며 살아야 하나 싶었고, 내가 편하려면 다른 형제들은 집과 가까운 학교에 스스로 등교했으면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상담 때마다 나는 한 아이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장애아이가 있어서 큰애는 이런 것 같고, 막내는 이런 것 같고,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노력하지만 항상 부족한 것 같고, 남편은 나와 생각이 다른 것 같고, 양육은 나만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나는 힘들다... 하는 이야기로 끝맺곤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지 않으려면 아이도 나도 서로 분리가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첫째와 막내는 같은 학교에 보내고 진성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도 이 결정은 후회하지 않는다.


입학하는 날 우리 아이와 같은 아이 몇 명을 보았다. 나는 진성이의 학교 생활을 위해 자진해서 반 총무를 맡겠다고 덜덜 떨며 손을 들었다. 그때 같은 반이었던 엄마들은 4년이 지난 지금도 학부모운영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학교 행사 때 만나는 진성이 얘기를 해준다. 작년 행사에서는 학부모운영회 부모들이 교실마다 들어가서 ‘톡톡 블록 만들기’를 했다고 한다. 도안을 놓고 평면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활동인데 열심히 블록을 위로 쌓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고. ‘어? 쟤는 뭐 하지?’ 하고 다가갔더니 “공룡 만들 건데요! 내 맘대로 하면 안 돼요?” 하고 당당하게 말하더란다. “어? 어... 그래그래... 맘대로 해도 돼... 근데 너 혹시 진성이니?” 물었더니 맞다고 했단다. 뭐든 공룡으로 만들고 공룡 그림을 잘 그리던 진성이가 여전하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도안 없이도 쭉쭉 쌓아서 완성하는 걸 보니 그새 많이 컸고, 자기 주장이 더 강해지긴 했지만 장점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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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그린 애니메이션 캐릭터 앞에서 즐거워하는 진성이 


1학년 입학 후 부모상담이 있기 전까지 한 달 반 동안은 등하교 때 이야기를 도통 들을 수 없어서 불안에 떨며 학교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는 매일 선생님께 하루 일과를 전해 들었는데 그게 되지 않으니 학교에서는 뭘 하는지, 얘를 봐주고는 있는지, 원반에서도 특수반에서도 방치되고 있는 건 아닌지, 온통 걱정뿐이었다. 그러다 상담 이후부터는 나를 다시 바꾸기로 했다. 하루종일 걱정에 휩싸여 있으면서 픽업을 위해 대기 상태인 내 꼴이라니.


학교에서 연락이 없다는 건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었고, 사실 무슨 일이 있다 해도 진성이가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일들이었다. 원반 선생님과 상담할 때, 진성이가 한 달 동안 1교시 전 30분 동안 쉬지 않고 큰 소리로 공룡 이야기를 해서 친구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충격이긴 했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흥분되고 즐거워서 나오는 행동이었는지 내가 주의를 주고 그 뒤로 힘들고 긴 수업시간이 이어지자 그 흥이 사라지긴 했다. 5월쯤 되자 ‘착석’이라는 기본 자세가 힘듦을 가중시켰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적응하는 시간을 거쳤다.


학생수가 많은 진성이네 학교의 경우 작년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격일로 가정에서 원격수업을 해야 했지만, 원격수업 집중과 과제수행이 어려운 특수교육대상자들은 매일 특수학급으로 등교해서 국어, 수학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오전수업과 점심식사를 마친 뒤 하교하는 방식이어서 진성이는 즐겁게 수업을 했다. ‘위드코로나’로 전환된 올해부터는 예전처럼 6교시까지 긴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잠시 적응기간이 필요하겠지만 꾸준하게 조금씩 해오던 학습들을 자주적으로 하고 있어서 조금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기대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건 몇 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진성이의 ‘다름’이 못내 불안하고 답답하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나보다 더 답답했을지도 모를 다섯 살 진성이의 마음, ‘고시퍼’의 뜻을 또래 아이들에게 알려주던 내 모습이 어린 진성이에게 믿음을 주는 행동의 시작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이후로 진성이가 자신만의 속도로 변화하고 성장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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