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nouncement board

  • HOME
  • 매거진

[뉴스레터 25] 우리들 이야기 - 책을 읽어주며 깨달은 것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조회 14회 작성일 25-03-14 09:36

본문

 

64598_1648949013.jpg
64598_1648949022.jpg
 

이번 호는 발달장애인 부모의 평범한 일상을 나누는 ‘우리들 이야기’ 코너입니다.

사단법인 제주아이 특별한아이 이보림 이사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64598_1662131586.jpg
우리들 이야기

책을 읽어주며 깨달은 것 

글쓴이  ???? 이보림

제주아이 특별한아이 이사.

독서 소모임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나는 사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 사는 것을 좋아한다. 100권 사면 읽는 건 한두 권 정도 되려나...

  한동안은 내 책을 사고 싶은 욕구를 “아이들 읽을 책을 사고 1년에 책 1000권 읽어주기”라는 다짐으로 해소했다. 나의 책 쇼핑 욕구를 아이들 책을 구매하는 것으로 풀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산 책을 읽어줄 수 있으니 나름 일석이조 아닌가.

  책을 읽어줘도 반응이 없는 큰아이에게 5년 정도 꾸준히 책을 읽어준 것 같다. 반응이 없더라도 엄마인 내가 참고 계속해줄 수 있는 활동이 무얼까 고민해보니 “책 읽어주기”가 답이었기 때문이다. 독서에 흥미 없는 아이에게 책 읽고 난 뒤 독후활동은 시키지 말라는 얘기를 듣고 ‘그냥 읽어주기’를 시작했다.


  1년에 1000권 읽어주기라고 하면 엄청난 것 같지만, 매일 3권 정도 읽어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큰애가 읽고 싶은 책 1권, 작은애가 읽고 싶은 책 1권, 아직 읽지 않은 책 가운데 엄마가 읽고 싶은 책으로 1권, 이렇게 잠자리에 누워서 책을 읽어줬다. 매일 똑같은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큰애에게는 읽어준 책이 몇 권 안 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책까지 합치면 300권이 넘을 거고, 작은아이에게는 목표대로 1000권 넘게 읽어준 셈이 되었다.

  큰애가 다섯 살 때부터 책을 읽어줬지만 4년째로 접어드는데도 별 반응이 없어서, 계속 책을 읽어줘야 하나 주춤했던 때도 있었다. 읽어주었던 책을 1년 단위로 정리하면서 다시 반복해서 읽어주곤 하는데, 어느 날인가 큰애가 반응을 보이면서 또 읽어달라고 말하는 책들이 생겼다. 그때, 읽어주기의 성과가 눈에 안보이는 것 같지만 이렇게 느껴지게 되는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64598_1662290067.jpg
  읽었던 책에 이름과 읽어준 해를 표시하는 스티커를 붙여두고 다음 해에 다시 읽어준다.     
관심 없는 책이라도 1년에 한 번은 꼭 읽어주는 셈.     

 이제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큰아이는 여전히 똑같은 책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면서 읽고 있다. 책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좋아하는 책이 여러 권 생긴 아이를 바라보며 이제 나는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를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책을 읽고 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도 내가 어떤 감정이 드는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시작한 독서모임에서 그 감정을 꺼내 놓으니 머리가 더 맑아지고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독서모임은 발달장애 중학생을 키우는 선배 맘이자 장애인식개선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송미 선생님으로부터 독서지도사 선생님을 소개받으며 시작되었다. 선생님과 함께 제주아이 특별한아이의 몇몇 회원들과 3년째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책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책에 대해 되짚어보고 기록하는 습관이 생겨서 계속 읽고 그때의 감정을 되새기게 된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책에 대한 나의 견해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나와 다른 새로운 시선으로 읽어내는 사람들을 만나면 짜릿한 희열도 느껴진다. 

64598_1662131276.jpg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뒤, 노력하면 고칠 수 있을 줄 알고 치료에 전념하다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은 3년 전에 번아웃이 오고 말았다. 그즈음 시작한 독서모임은 오로지 아이만 바라보며 살았던 나 자신을 조금은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아이의 치료가 1순위, 비장애 동생의 양육이나 가족 행사 등은 후순위로 밀다 보니 가족간 불화는 물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삐그덕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의 편협함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어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우리 아이가 장애가 있다면서 불행을 과시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나의 삶에서 희노애락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이고,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역할은 장애를 없애주거나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장애가 있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아이와 내가 서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됐다. 독서모임 덕분이다. 

  독서모임은 독서지도사 선생님과 제주아이 특별한아이 회원들과 함께 한다. 참여 하는 회원은 6명 정도 되는데,  평소 읽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책들을 주로 함께 읽는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은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율리시즈, 2011)이다. "진정한 사랑은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성장시키는 것"이라는 구절에서, 그동안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했던 것들, 엄마가 희생하는 만큼 성장하리라 기대하며 다그친 것들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독서모임은 매주 금요일에 진행되며 책과 마음을 함께 나눌 분이라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64598_1662290015.jpg

    나는 아이들 책을 여전히 많이 사들이고 있지만 나를 위한 책 쇼핑의 욕구도 더욱 강해져 우리 집에는 기하급수적으로 책이 쌓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100권을 사면 열 권은 읽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책이 삶의 문제를 전부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살아가다 고민이 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글 한 구절의 울림이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 같다. 독서모임을 시작할 때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모토를 정했었는데, 이제야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고 내 삶의 방향이 그 모토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64598_1662177494.jpeg

일러스트 남혜진 @zzam.o

모두들 태풍에 무탈하시고   
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 대표자 : 박정경 사업자등록번호 : 153-82-00426 대표전화 : 070-8900-9667 FAX : 070-8900-9666 E-Mail : scatdream@naver.com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천수로 52 2층 (오성빌딩)
Copyright © 2021 별난고양이꿈밭. All rights reserved.Designed By ADS&SO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