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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학생 인권은 닫힌 교문 앞에도 오지 못한다
글쓴이 :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장애학생의 교육받을 권리가 학교 앞에서 가로막히는 일이 여전히 비일비재합니다.
지난 11월 17일 인권연대의 '세상읽기' 소식지로 발행되었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사무국장님의 글에 대해 재수록을 허락받아
이번 호 토닥토닥 매거진으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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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화를 하나 받았다. 장애인의 학부모가 전화로 진학 상담을 하는데 교사가 "왜 우리 학교에 오려 하느냐? 우리는 가르치기 어렵다"며 장애인 학생의 입학과 지도를 일방적으로 거부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1982년에도, 장애인들이 특수교육대상자로서 다른 국민과 마찬가지로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한 1994년에도,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이 제정된 2008년에도,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 UN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2016년에도, 그리고 현재 2022년까지도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의무교육 책임이 있는 교육 공무원이 교육청을 제끼고 권한을 남용하는 것,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한 배치여부를 임의적이고 일방적으로 학부모에게 통보하는 이런 악의적인 차별이 버젓이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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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10조에도 강력하게 보장해 놓은 장애인 교육권 보장이 늘 버거운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교육기본법인 초중등교육법에 장애인 학생을 명확하게 ‘학생’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장애인 학생을 위한 관련 법에 처벌 조항을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예비군 훈련을 방해해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 방해가 아니라 교육에 가까이 오는 것을 막아도 대중들이 인지할 수 있는 실효적인 집행체계가 없다.
다투어보려고 해도, 장애인 학생의 입장에서는 시간과 타이밍에서 처절하게 약자의 위치에 있는 싸움이다. 당장 몇 달 뒤에 학교에 진학을 해야 하는데, 인권위에 진정하거나 법적으로 고소 고발해서 다퉈보기엔 학생으로서의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다. 법원 판결을 받을 즈음이면 이미 졸업을 하거나 다른 학교로 가버려서 개인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것은 별 이익이 없다. 또한 그런 학교와 교사를 관리감독하는 교육청을 상대할지 직접적인 그런 차별 발언과 행위를 그 교사를 상대할지, 그 교사의 상급자인 교장을 상대할지도 불분명하다.
현재 차별 피해를 구제받을 가장 빠른 방법은 언론에 공개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구제를 신청하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강도 높은 방법을 택하면 차별을 구제받아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더라도 불이익과 보복의 두려움을 안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다른 선진국처럼 평소에 이런 학교와 교사를 모니터링하고 실제적인 차별 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공익 소송을 진행하는 기구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대학을 제외한 그 어느 교육 기관에서도 장애인 학생이 차별을 이유로 학교와 교육청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제대로 승리한 적이 없다. 있다고 해봐야 상징적인 행정소송이나 이미 입학한 이후의 지원 미비와 차별에 대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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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교육 현장에 진입한 학생들은 학교 밖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많은 장애인 대학생들이 이른바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으로 대학을 들어오지만 본인 스스로 ‘특수교육’ 대상자임을 거부하거나 오히려 앞장서서 다른 장애인의 학교 진입을 막고 차별하는 행위가 벌어진다. 자원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별 구조가 우리끼리의 갈등을 부추긴다.
결국 우리 가운데 살아 남는 자만이 교육받을 수 있는 것일까. 학교와 학력을 위한 교육, 군사 문화의 잔재로서의 교육은 있지만 개인과 공공의 행복을 위한 교육은 없다. 장애인 학생의 인권을 보조해야 할 특수교사조차도 장애인 학생들이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도 하는 경우가 있다.
교육 현장에서의 장애인 차별은 근본적으로 비장애인 학생에 대한 막대한 협박이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차별행위이다. 또한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과 경험을 배울 기회를 의도적으로 박탈하는 일이기도 하다.
법률과 제도가 버젓이 강력하게 있음에도 지난 반세기 동안 교육현장에서 동일한 차별과 배제가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것은 그 법률이 그런 장애인 교육 차별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지 못할뿐더러 피해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이고, 그런 차별 행위에 대하여 법의 효능이 의미있게 수용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진주교대에서 있었던 장애인 학생 입학 거부를 모의하기 위한 입시 성적 조작도 그래서 벌어지는 것이다. 교육차별은 장애인에게 있어 정서적 물리적 학대 행위에 준하지만 교육청 역시 일반적인 학대 사례처럼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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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존재는 하지만 전달과 입력은 되지 않고 활용되거나 집행되지 않는다. 학생을 고르지 않고 어떤 학생도 존중해서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이고 정체성일 텐데 왜 자기가 장애인 학생을 맡아야 하냐고 따지고 드는 담임에게, 자기는 발달장애밖에 '관리' 하지 않는다는 특수교사에게 우리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장애인 학생에 대한 차별이 그 죄질이 나쁜 이유는 장애인 부모에게 그 차별이 통한다는 것을 가해자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비장애인 의무교육 대상자에게는 그런 말 한마디도 못하면서, 바장애인 부모에게는 국민신문고 민원 하나조차 무서워하면서 장애인 부모에게는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한마다에 부모와 학생들이 아무 말 못하고 무너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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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장이 무너지지만 물러서면 안된다. 포기하면 된다. 차별을 요령껏 피해 가면서 교육청 게시판에 문의를 남기시라. 입학을 거부하는 글을 남기면 공식 증거가 남는 것이다. 대부분 학교는 대놓고 그런 대답을 남기지 못한다. 학교는 장애인 학생에 대해 장애를 이유로 된다 안 된다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장애인 부모님들, 장애인 학생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들을 두 팔로 보호하며 함께 싸워줄 우리가 있다. 우리 동네 친구에게, 우리반 친구에게 왜 딴 학교로 전학가라 그래요? 왜 그래요? 같이 화를 내줄 같은 학생들, 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장애인이든 아니든 누구든지 걱정하지 말고 순풍순풍 낳아라, 길러라, 국가가 교육청이 사회가 이웃들이 책임지고 다양한 사람을 위한 교육으로 지원할게, 교육할게, 하는 세상을 만들자. 우리, 차별 따위에 굴복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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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큰 눈에 불편했지만, 겨울을 만끽할 수 있어 즐거웠던 주말이었습니다.
'토닥토닥 매거진'은 이번 금요일에 40호를 발행하고 올해를 마무리합니다.
차분한 연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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